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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캐나다워홀 토론토 라멘 레스토랑 서버잡 후기, 영어 얼마나 늘까?

by ν경제플레이φ 2023. 5. 7.

캐나다 워홀 중 가장 많이 하는 직업 서버. 나는 레스토랑, 카페 모두 해봤는데 그 중 처음으로 했던 라멘집 레스토랑에서 6개월의 경험담을 공유해보고자 한다. 영어 못하는데 할 수 있을지, 이력서는 어떻게 돌리는지, 인터뷰는 어떻게 봐야하는지, 일을 하면서 영어가 얼마나 늘 수 있을지 궁금해하시는 분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사실 결론은 뭐든 자신감이다.

 

 

 

 

1. 레쥬매 돌리기 (feat. 코시국)

2020년 7월, 내가 토론토에 도착했을 때는 한참 코비드로 인해 5개월 동안 락다운으로 도시를 폐쇄한 상태였다. 다행히도 2주간의 입국 자가격리를 마친 후 몇 주후에는 레스토랑에서 식사가 가능한 stage3로 완화되었다. 이 와중에 도대체 어떻게 일자리를 찾아야 할지 정말 막막했다. 그동안 이력서 돌리는 것에 대해 인터넷에서 그토록 많은 후기와 이야기들을 보았건만, 말짱 도루묵 되는 시기었다.  

 

길거리를 나가면 영화 속 한 장면처럼 가게들은 전부 문을 닫고 유리창은 전부 박스나 종이가 붙여져 있었다. 휑한 거리를 걸으면 정말 재난영화 속에 있는 것 같았다. 혈연·지연·인맥 아는 사람 하나 없이 무작정 갔던 워홀이라, 더구나 코시국에, 망망대해 속에 혼자 있는 것 같았지만 그래도 캐나다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설렘 가득했던 시기이기도 하다.  

 

가게들을 돌아다니며 레주매를 돌리는 것은 의미가 없을 것 같았다. 닫은 곳도 많고, 열려있더라도 구직하는 곳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일단 인디드로 하이어링 하는 곳을 찾아보았다. 당시 내가 찾았을 때 토론토 내에서는 5곳 정도였던 것 같고, 먼저 온라인 지원을 한 후에 가게들을 찾아가 보기로 했다.

 

실제로 지원한 곳을 방문했을 때 문을 닫은 곳도 있었고, 브레이크타임이라 닫혀있던 곳도 있었다. 그런 가게들은 이력서를 문 앞에 꽂아두고 왔고, 가게 안에 들어가서 직접 이력서를 건넨 곳은 2~3곳이었다. 5개밖에 안 갔는데도 서로 위치가 멀고, 초행길이라 헤매고 그래서 생각보다 꽤 힘들었다. 우연인 건지는 모르겠지만, 직접 이력서를 건네었던 가게들 두 곳에서만 연락이 왔다.

 

2. 잡 인터뷰  

다행히 일주일 정도 지났을 때 두 곳에서 연락이 왔다. 둘 다 다운타운에 있고, 한 곳은 한인레스토랑, 한 곳은 일식레스토랑이었다. 한인레스토랑은 고깃집이었는데 방문했을 때 가게에 손님이 가득했고 한국분과 면접을 봤다. 그냥 한국에서 알바 보는 것처럼 간단한 얘기를 하고 끝이 났다. 일식레스토랑은 처음부터 메일로 연락이 왔고, 인터뷰 날짜도 다 메일을 통해서 연락했다. 첫 영어 인터뷰에 엄청 긴장을 하고 가서, 내가 뭐라고 말했는지도 잘 기억이 안 날 정도다.

 

처음 매니저와 인사를 하고, 매니저가 준비한 프린트물을 보여주면서 회사에 대한 소개를 먼저 해주었다. 우리 레스토랑은 인터네셔널한 기업이며, 전 세계 어느 나라에 몇 개의 체인점이 있는지, 직원들에 대한 복지는 어떤 것인지 등등 본인의 회사에 대한 소개를 들려준 후, 이제 나에 대한 소개를 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우리 레스토랑에는 어떻게 지원하게 되었는지, 레스토랑에서 일한 경험은 있는지, 컴플레인을 하는 고객을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동료와 마찰이 일어날 때 주로 어떻게 해결하는 편인지와 같은 질문을 했다. 영어를 유창하게 잘하지 못하지만, 레스토랑 서버는 유창한 영어 실력보다는 좋은 인상과 자신감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최대한 많이 웃으면서 자신감 있는 목소리로 말하려고 노력했다. 

 

인터뷰는 대략 20분 정도 걸린 것 같고, 며칠 지나지 않아 함께 근무하면 좋겠다는 메일을 받고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3. 일식집 서버잡

캐나다 일식집은 사실 한인들이 운영하는 곳이 대부분이다. 특히나 스시집이 그렇다. 라멘집은 잘 모르겠다. 내가 일한 라멘집은 ceo가 캐내디언 일본인, 캐내디언 한국인인 다소 큰 규모의 프랜차이즈였다. 나는 잘 몰랐지만, 토론토에서는 체인점도 여러 개인 꽤나 유명한 라멘집이었다. 사장님이나 ceo는 당연히 볼 기회가 전혀 없고 매니저가 모든 것을 총괄한다. 매니저는 영어 네이티브 실력의 베트남출신으로 비자를 지원받으며 pr을 준비 중이었다. 그리고 베트남, 일본, 한국 출신의 코워커들이 더 있었다. 라멘집이다 보니 코워커들이 아시아인들 뿐이었지만 일할 때는 다 같이 영어를 쓰니 나름 재미있게 일했다. 다만 일본 스타일이 강한 레스토랑이다 보니 테이블넘버링과 손님이 들어오고 나갈 때 일본어로 부른다. 그래서 처음에는 일본말을 외워야 하는 것들이 많이 헷갈렸다. 

 

 

서버잡 6개월, 영어 안 늘 수가 없다. 

첫날은 엄청 긴장했던 기억이 난다. 매니저가 손님이 들어오면 이름, 연락처를 적고 자리를 안내하고 메뉴를 받는 법을 먼저 보여주었는데 한 번 주여주고는 나더러 바로 해보라고 해서 엄청 당황했었다. 캐나다 가기 전에 영어 스피킹 연습을 엄청 하고 가긴 했지만, 실전은 정말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일회용품, 손 소독 등 너무나 일상적인 말들을 몰라서 많이 답답했다. 그래도 6개월 일을 해보니 어차피 일을 하면 늘 쓰는 말, 비슷한 말을 반복하기 때문에 적어도 일에서 사용하는 영어 실력은 늘 수밖에 없다.

 

단, 영어를 하려는 상황에 나를 계속 노출시키려고 노력해야 한다. 레스토랑이다 보니 바쁘면 음식을 서빙하고 치우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에 말하는 시간보다 노동의 시간이 많을 때가 훨씬 많다. 손님이 오면 먼저 주문을 받으러 가고, 말이 많고 친절한 손님이면 눈치껏 대화를 더 하려고 노력했다. 이때 눈치가 중요한 이유는 대화를 하고 싶어 하지 않는 손님들도 물론 있기 때문이다. 영어권이라고 해도 모두가 다 스몰톡을 좋아하는 건 아니다. 그리고 손님과 대화를 지나치게 많이 해도 매니저가 좋아하지 않는다. 모든 건 눈치껏... 그리고 스몰톡이 길어지면 자칫 내가 하나도 알아듣지 못하는 난감한 상황이 올 수도 있으니 주의...

 

It's something

어느 날은 How was everything?이라는 나의 질문에 "It was good. It's really something."이라며 자꾸 something, 을 반복하는 손님의 말을 듣고 그때는 "oh, Thank you"라며 웃으면서 끄덕였지만 속으로는 왜 이게 something이라는 거야? 라며 좋은 뜻이겠거니 눈치껏 넘겼다. 얼마 지나지 않아 It's something 하면 '놀라워, 아주 멋져, 최고야.'라는 의미라는 걸 알게 되었다. 

 

또 정말 아쉬운 것은 아무래도 코비드 시국이었기 때문에 홀손님이 많지는 않았다. 테이크아웃이 대부분이고 비가 오거나 손님이 없는 날은 할 게 없어서 포장용기들을 접거나 청소를 하면서 시간을 때워야 했다. 그것마저도 할 일이 떨어지면 매니저가 서버들은 조기퇴근을 시켜버린다. 그리고 모임 제한이 있었던 시기라 코워커들과 개인적으로 친해질 시간들을 가지기도 어려웠다. 

 

전화영어, sorry의 연속...

일을 할 때 영어에 있어서 가장 어려운 것은 아무래도 전화받기였다. 처음에는 도대체 뭐라는지 하나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I'm sorry? Could you repeat again, please? 의 연속이었다. 결국 다른 코워커들을 바꿔줄 때 그 좌절감이란... 

 

그래도 이미 말했듯, 반복하면 늘 수밖에 없다. 처음에 잘 들리지 않았던 것은 익숙하지 않았던 메뉴들 이름 때문도 있어서, 홀에서 주문받는 것에 익숙해지니 전화 주문도 같이 익숙해졌다. 

 

초반에는 전화를 받고 내가 hello, this is k restaurant, how can I help you?라고 하면 손님이 속사포처럼 쏟아내서 전혀 알아듣지 못해서 내가 다시  I'm sorry, could you speak little slowly, please?라고 하면 착한 캐내디언 손님들은 멋쩍어 웃으면서 oh, I'm sorry 라며 빨리 말해서 미안하다고 천천히 다시 말해주곤 했다. 내가 못 알아들은 건데 자기가 빨리 말한 탓이라는 착한 캐내디언 손님들... 

 

이처럼 처음에 막 쏟아내는걸 한동안 못 알아듣다가 어느 날 갑자기 들렸던 순간이 었었다. "I'd like to place an order~." 아, 주문하다를 order이 아니라, place an order이라고 하는구나. 이때 처음 알았다. 그리고 이렇게 알게 된 후에는 그동안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place an order이 계속해서 들리기 시작했다. 그냥 일상에서 엄청 많이 쓰는 어휘더라.

 

Your name is, what?

전화 주문받을 때 가장 힘들었던 건 이름이었다. 테이크아웃 주문은 이름과 번호를 반드시 같이 적어놔야 하는데 이름을 적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우리가 "제 이름은 김예원입니다. 예는 여, 이 예요."라고 하는 것처럼 영어이름도  "It's Claire. It's C as in "Cat", L as in "Lion", A as in "Apple", I as in "Ice Cream", and R as in "Rainbow"."라고 한다. as in을 알아듣기까지도 3개월은 걸렸던 것 같다. 그래도 이렇게 배운 영어들은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서버잡 팁은?

이 점이 많이 아쉽다. 그러나 내가 있었던 2020년 7월은 잡을 구한 것만으로도 감사한 시기였다. 이마저도 6개월 후에 2차 락다운이 와서 모든 실내가 다시 폐쇄되는 바람에 레스토랑에서도 음식 먹는 것이 금지가 되었다.  결국 나는 토론토에서 밴쿠버로 이동하는 큰 결정을 했다. 결론적으로 밴쿠버에서 더 재밌게 보냈지만, 당시에는 이 결정을 내리기까지 정말 힘들었다. 

 

무튼, 내가 일했을 때는 레스토랑 내에서 손님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팁은 거의 없었다. 그래도 테이크아웃을 하면서 팁을 주는 손님들도 더러 있었다. 그리고 내가 일한 레스토랑은 일본 스타일이 강했기 때문에 주방과 서버가 팁을 비슷하게 나눠가져 갔다. 예전에는 주방, 서버로 나누는 게 아니라 일한 경력대로 나눴다고 하니 텃세가 얼마나 심했을지 느껴졌다. 사실 팁을 배분하는 방식이나 지급방식은 레스토랑마다 천차만별이다. 이에 대한 자세한 얘기는 하려고 하면 끝도 없다. 

 

우리 레스토랑은 팁은 2주마다 캐시로 줬다. 그때는 손님이 워낙 없어서 팁에 대한 기대가 없었기 때문에 잘 기억은 안 나지만, 한번 받을 때 30~60불 정도였던 것 같다. 진짜 적은 편이다. (참고로 이후에 바텐더에서 주말에 잠깐 일했을 때, 역시 코로나라 손님이 없는 시기였는데 팁을 하루 40~60불씩 받기도 했다.) 

 

 

 


If there weren't Covid...

코로나가 아니었으면 분명 더 많은 경험들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미 벌어진 일이고 흘러가는 일인데 뭐 어떡하겠냐. 그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것들로 노력했다. 사실 일을 구하기 힘들어서 한인 레스토랑을 먼저 알아보고 일을 했는데 너무나 한국적인 분위기라 도저히 이건 아닌 것 같아 1달 만에 그만두고 일을 찾아서 라멘집에서 일하게 된 것이다. 안된다고 포기하면 안 되는 것이고, 안될 것 같아도 찾아보면 길이 있더라. 

 

이렇게 코로나 워홀 2년 동안 토론토, 밴쿠버 두 도시를 모두 경험하며 6곳에서 일을 했다. 코로나이기에 못한 것들도, 아쉬운 점들도 많지만, 그렇기에 또 특별했던 것들도 분명 있다. 어쨌든 나에게는 단 한 번뿐인 시간이고 경험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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